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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마크 로스코 - 그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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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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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3375 |
Mark Rothko (1903~1970)
로드코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의 화폭 크기, 전시장에 걸리는 높이, 조명의 적절한 조도,
그림과 그림 사이의 간격, 벽면의 명도, 전시장 가운데 등받이 없는 의자의 설치, 이상적인 감상거리 등
모든 사항에 세세하게 신경을 쓰곤 했다.
유태계인 로드코는 1903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뒤 1913년 가족을 따라 미국에 이민와서 성장하였다.
연극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로드코는 1940년대 초에는 미로, 키리코, 에른스트 등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 당시 그는 초월적 세계와, 원시미술과 고대미술 세계와의 교감 등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후 1946년 베티 파슨스 화랑의 작가로 합류하면서 그의 작품에는 여러 개의 면 분할과 이미지의 완전한 추상화로
특징 지워지는 중요한 변화가 나타난다.
형태는 가볍고 비정형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으며 색채와 빛에 의한 효과 추구에 역점이 옮겨졌다
그는 1950년에 뉴욕화파(New York School)의 일원이 되었고
1954년부터 영향력 있는 시드니 재니스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어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는데,
추상표현주의의 풍미와 함께 당대 최고의 작가로 부상한다.
1960년대 초에 이르러 저명인사가 된 그 였지만 변화된 자신의 사회적 위상에 대해 마뜩찮게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미술적 진보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지 않았는지 두려워하였다.
그는 당시 미증유의 경제적 번영과 함께 예술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는 현상에 대해 극도로 불편해했다.
더구나 미술계가 그 거대한 시스템으로 자신과 같은 작가들을 착취하고 이용만 하려한다고 크게 불만스러워 하였다.
1960년대 후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어두워졌는데,
말기작에서는 단 하나의 수평선으로 화면이 양분되는 등 그 구성이 더욱 단조로워지고
무거움과 우울함의 정조가 짙게 배어 있어 우울증이 악화되던 작가의 당시 심적 상태를 반영하는 듯하였다.
그는 생애 말년 3년간을 작가 자신이 생애 최고의 성취라고 자평하였던 텍사스 소재 비종파 교회
‘로드코 채플’ 의 벽면 설치회화 제작에 몰두하였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서양 종교미술 전통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필생의 과업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1970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은 그는 이듬해 열린 ‘채플’의 봉헌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로드코 채플의 내부 벽면을 가득 채운 초대형 캔버스는 완전히 새로운 스케일감을 조성하며,
그 규모와 색채와 형식의 역설적 강렬함이 조성하는 정묘하게 연출된 분위기 속에서
내방객은 절대무(絶對無)의 체험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내방객은 로드코의 ‘세팅’ 속으로 자신을 몰입시켜
몰아의 경지에 들어서고 신비적 공허와 숭고를 체험하게 된다.
과거에 그의 작품을 접한 경험이 있었을 많은 이들에게도 연이어 펼쳐지는 로드코의 회화세계는
경이로움과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직설적 충격과 의외성으로 점철된 다차원 현대미술의 과격함에
적응이 된 우리에게, 거의 유사한 패턴의 반복 때문에 일견 단조롭고 진부해 보이는 그의 평면적 ‘색면구성’이
그토록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드코 회화의 그 무엇이 감상자를 매료시키며 그의 작품세계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
예술을 통한 정신성의 구현
그의 회화는 북유럽의 낭만주의 회화, 미국의 섬광화파의 회화, 지우 밀튼 애버리의 회화 등에 맥이 닿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로드코 자신 고유의 것으로 귀착된다.
그린버그는 “로드코 회화의 단순하고도 단호한 미감, 그것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 속한 것”이라며
적극적인 분석의 대상에서도 제외시킨 바 있다.
이렇듯 추상회화의 역사에서도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로드코 회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은밀히 구현된 ‘정신성’이라 할 수 있다.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예술적 상징성이 폐기되어버린 현대에,
로드코는 ‘예술을 통한 정신성의 구현’ 을 자신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회화의 종교적 성격에 관해서 종종 언급하곤 했다.
1957년 로버트 멜빌은 “로드코 회화의, 극도의 단순성에 접해 사람들은 그것이 지식과 이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낀다.
만일 세상의 모든 회화가 그의 회화처럼 그려진다면 우리는 모두 선불교로 개종하게 될 것”이라며
적멸(寂滅)의 로드코 회화에 내재된 정신성을 인정하였다.
작가 게하르트 리히터도 최근의 인터뷰에서, 일견 극도로 장식적인 로드코의 회화에는 작가의 초월적 염원이
명백하게 구현되고 있으며, 각별히 명상적이고 신비적이며 종교적인 특성이 엄존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어느 부호의 아파트 벽면에 걸려 너무도 ‘예쁜’ 로드코의 그림일지라도 거기에는 ‘정신성’의 아우라가
부지불식간에 드러난다. 사찰의 단청이 그토록 화려하고 장식적이어도 그것이 단순한 감각적 쾌감만을
주는 법이 없는 것처럼. 프라 안젤리코의 벽화가 어둠을 힘겹게 헤치며 흔들리는 몇 자루 촛불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 극도로 감각적이고 장식적일 수 있는 적·황·청·주황의 대비는 놀랍도록 영적이며
종교적으로 전화될 것이다.
이처럼 일견 너무도 장식적이고 감각적이기만 하던 로드코의 회화가 어느 순간 극단적으로
비물질적인 것이 되어 감상자에게 순수한 내적·정신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때 그의 회화의 정신적 측면이
오롯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로드코의 가족이 친구의 가족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 그리스에서 머물던 어느 날,
친구의 어린 딸이 신전의 폐허를 그리고 있었다. 어린 소녀가 물었다. “참, 아저씨
화가시죠? 아저씨는 무슨 그림을 그리세요?” 로드코가 문득 깨달은 듯이 대답하였다.
“응, 나도 ‘그리스의 신전’을 그린단다.” 그는 자신의 회화를 의미 전달의 수단, 메시지가 담긴
비전(秘傳)의 밀지(密旨)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로드코는 자신이 심취하였던 고대 그리스 미술, 중세 기독교 미술, 그리고 르네상스 미술에 구현된
추상적 주제를 (재현적이 아닌) 추상적인 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한 효과적 어법을 찾기 위해 생을 바쳤다.
그의 회화에 있어 주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며, 특히 비극적이며 초시대적인 주제일 때 더욱 그러하였다.
그에게 있어 미술은 목적 자체가 아닌, 숭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라인하르트를 제외한 당대 대부분의 작가와 달랐다.
로드코는 자신의 그림이 장식적이라고 평가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고
자신은 색채 그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하였다.
색채란 오직 비극·환희·운명 등 삶의 단면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그는 “나의 회화에서 색채간의 관계에 대해서만 감동을 받는다면 이는 핵심을 놓친 것이다.
감상자가 나의 그림 앞에서 우는 것은 내가 그림을 그릴 때 가졌던 종교적 체험을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였다. 로드코의 이러한 진술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회화세계의 재발견은 그 형식적 혁신성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정신적 차원의 심오함에 초점이 맞춰질 때
미술사의 한 장에서뿐 아니라 감상자 개개인의 내면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회고전 전시장에서마다, 경이로움의 염이 내비치는 관람객의 면면은
그러한 재발견의 내적 흥분을 웅변해 주었다.
전시장을 찾은, 마음이 맑은 어린이에게라면 로드코의 전기(前期) 밝은 그림은 노을과 구름을 그린 것이고,
후기 어두운 그림은 밤하늘을 그린 것이라고 말해 주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사는 회색도시의 소시민들도 로드코 회화의 참 깊이를 알게 되면
노을이나 구름을 눈여겨보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그의 그림을 통해 노을과 구름과 어두운 밤하늘, 그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장려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최효준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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